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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의 나라 세네갈

6월 하면 많은 사람들이 월드컵을 떠올릴 것이다. 월드컵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국가들이 세네갈, 카메룬,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 공화국, 튀니지 등의 나라인데, 이들은 월드컵에서 신흥 강대국일 뿐만 아리나 '월드 뮤직'에서도 나름의 강국들이다. 그중 아프리카에서 가장 서쪽에 있는 나라인 세네갈은 1980년대 말 이후 아프리카 출신의 음악인들 중 최고의 국제적 스타인 유쑤 은두르(Youssou N'dour)의 고향이기도 하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서쪽'이라는 말은 달리 말하면 '아메리카 대륙과 가장 가깝다'는 뜻이다. 게다가 수도인 다카르(Dakar)는 세네갈에서도 가장 서쪽에 위치해 있다. 지도를 보면 이곳이 일찌감치 국제화된 지역이라는 사실을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프랑스의 식민지배를 받았지만 영국도 호시탐탐 노리던 곳이라서 그 덕분(?)에 프랑스어가 통용되고 영어도 사용된다. 물론 도시화되고 교육받은 계층에 한정된 이야기지만. 1960년 프랑스로부터 독립하여 대통령 권좌에 오른 레오폴드 셍고르(Leopold Senghor)라는 인물이 20년 동안 통치하여 '안정'을 이룩한 나라이기도하다.

유쑤 은두르(Youssou N'dour)

유쑤 은두르(1959년생)는 다카르의 빈민촌인 메디나(Medina)에서 월로프(Wolof: 세네갈의 다수민족)족의 한 가정에서 성장했다. 그리오트(griot)라고 불리는 서아프리카 구술 음악의 전통(oral tradition)을 어머니로부터 전수받아 4옥타브 이상을 오르내리는 음역의 목소리를 갖게 된 그는 10대 무렵부터 숙련된 뮤지션이 되어 12살 때부터 무대에 오르게 되었다. 출발은 댄스 클럽 밖의 주차장 같은 곳이었는데, 명징하면서도 소울풀(soulful)한 소년의 목소리는 처음에는 지나가던 행인의 주목을 받는 데 그쳤지만 나중에는 당시 세네갈의 스타 밴드 오브 다카르(Star Band of Dakar)로부터 스카우트 제의를 받기에 이르렀다. 에뜨왈르 드 다카르(E'toile de Dakar)를 거쳐 슈퍼 에뜨왈르(The Super Etoile)로 밴드 이름이 정착할 무렵인 1979년  경에는 유쑤 은두르가 밴드의 주도권을 장악했다. 이때 그는 이미 12종의 카세트 앨범을 레코딩한 상태였고, 1984년부터는 '유럽 투어'도 시작했다. 이것 역시 처음에는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거주하는 세네갈 이민자들의 택시기사 동업조합의 도움을 받은 초라한 것이었지만, 그의 음발라흐(mbalax)음악이 서양의 팝 스타들에게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유쑤 은두르

음발라흐 음악

음발라흐 음악이란 1970년대에 형성된 '세네갈의 젊은 세대가 좋아하는 음악'을 가리키는 말이다. 따라서 세네갈의 토속음악이 아니라 1950~1960년대부터 국제적 영향과 지역의 전통이 혼합되는 문화적 과정의 산물이다. 서아프리카의 전통적인 그리오트의 가창과 월로프(Wolof)족의 타악기(특히 사바르sabar와 부가라부bugarabu)를 기반으로 하고, (역)수입된 '아프로쿠반 음악'의 리듬과 악기편성 그리고 미국의 재즈, 소울, 록의 영향을 흡수하고, 때로는 북아프리카의 이슬람 음악의 전통도 가미되어 형성되었다. 음발라흐 음악은 1980년대 유쑤 은두르를 통해 '서양화'되고 '국제화'되어 서아프리카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악이 되었다. 그가 국제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 것은 아프리카 산(産) 월드 뮤직이 국제적으로 알려진 1980년대 중반입니다. 남아프리카 음악을 실험한 폴 사이먼(Paul Simon)의 [Graceland]에도 참여했지만, 결정적인 계기는 피터 가브리엘(Peter Gabriel)의 [So](1986)에 수록된 "In Your Eyes"를 듀엣으로 부르고, "Shaking the Tree"를 공동으로 작곡한 일이었다. 곧 가브리엘의 '동지'이자 국제적 스타가 된 유쑤 은두르는 1988년 엠니스티 인터내셔널에서 개최한 "Human Rights, Now!"의 세계 순회공연에 공동 헤드라이너로 참여했다. 피터 가브리엘은 물론 브루스 스프링스틴, 스팅, 트레이시 채프먼 등 '인권과 정의'에 성의를 아끼지 않는 음악인들과 동급으로 무대에 선 것이다. 같은 해 런던의 웸블리 스타디움에서 열린 [넬슨 만델라 고희 기념 공연]에서 피터 가브리엘과 함께 "Biko"**를 부르는 등, 유쑤 은두르는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개최된 대중음악의 메가 이벤트들에서 '아프리카 출신으로서는 유일하게 참여하는' 존재가 되었다. 유쑤 은두르는 자국의 팬들에게 '지나치게 서양화된' 스타일을 선보인다고 비판받기도 한다. 실제로 몇몇 앨범은 '영어권 청중'에게 호소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 그렇지만 아프리칸 팝의 스타들이 국제적인 성공을 거둔 뒤에는 아예 선진국으로 이주하여 활동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세네갈에 남아 자신의 스튜디오인 히피(Xippi: 'Eyes Open'이라는 뜻)를 근거지로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는 점만으로도, 그가 자신의 뿌리를 망각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쑤 은두르는 2012년 세네갈 문화관광부 장관에 임명됐으며, 정부조직 개편 뒤 관광레저부 장관으로 연임하였다. 2013년 폴라 음악상을 수상했고, 2017년에는 다카마쓰노미야 전하기념 세계문화상을 받았다. 2020년에는 권위 있는 스웨덴 왕립 아카데미에 합류했다. 이제 70줄을 넘어선 유쑤 은두르의 영향력은 1980년대에 비한다면 조용한 것 같기도 하지만 그는 이렇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그가 1980년대 '젊은 아프리카'를 대표했던 문화적 아이콘이라는 점은 영원히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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