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반응형

해리 벨라폰테

트리니다드 섬의 칼립소 음악

카리브해 최남단에 위치한 트리니다드 섬, 그곳의 흑인 원주민들로부터 시작된 음악이 칼립소(Calypso)이다.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는 칼립소는, 단순한 멜로디와 리듬을 반복해서 부르는 즉흥곡을 일컫는데, 낙천적이고 신나는 선율과는 달리 사회 풍자적인 노랫말을 실어 당시 흑인들의 강도 높은 노동에 지친 이들의 애환을 달래주는 역할을 해왔다. 16세기 이래로 트리니다드에는 프랑스 정착민들과 아프리카 흑인 노예들이 들어오기 시작해 주민 대부분이 프렌치 끄레올과 아프리카 흑인으로 구성되었고 프랑스어가 공용어인 상황에서 스페인의 트리니다드는 토바고와 더불어 영국의 식민지가 되었는데, 칼립소는 이러한 트리니다드의 기구한 식민지 역사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흑인들이 들여온 아프리카적인 리듬 구조와 프랑스 사람들이 들여온 카니발 의식, 영국인들로부터 차용한 피진 잉글리시(비즈니스용 영어)와 스페인 사람들로부터 빌려온 멜로디는 칼립소의 뼈와 살을 이루는 요소가 되었다. 그것이 바로 트리니다드 흑인 공동체의 핵심적 의미가 담긴 문화적 그릇 ‘칼립소’이다. 칼립소는 단순한 리듬이지만 템포를 자유롭게 택해 노래가 되고, 악센트도 한 박자마다 반복되어 노래를 동반하게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가사는 대부분 사투리가 심한 영어로 되어 있는데, 트리니다드가 영국의 신민 지배를 받은 탓이다.

가난하고 문맹자가 많은 서인도 사회의 흑인 사회에서는 칼립소가 때때로 신문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읽고 쓰기에서 소외되는 것은 아마도 경제적 빈곤이나 정치적 냉소주의가 인간에게 주는 가장 수치스러운 상처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칼립소에는 그 노랫말에 하나의 이야기가 있어 역사적 사건이라든가 일상 속의 온갖 사연들이 노래로 엮어진다. 그것은 마치 신문의 사설처럼 사회를 풍자하는 내용이기도 하고 정치나 권력에 대한 민중의 저항을 이끌어내기도 하다. 따라서 칼립소는 말로 공격하거나 풍자하는 것을 생명으로 한다. 그것도 유머를 섞어서 아주 재미있게 비꼬는 것이다. 직설적인 말로 표현을 했던 ‘누에바 칸초네’와는 조금 다른 부분이기도 하다. 이런 내용은 해리 벨라폰테의 마틸다(Matilda)라는 곡을 들어보면 잘 알 수 있다. 

 

Matilda - Harry Belafonte

마틸다, 마틸다가

내 돈을 가지고 바다 건너 베네수엘라로 달아났어요.

친구여 난 5백 달러나 털렸다네, 어디 그 뿐인가

마틸다는 내 고양이와 말도 팔아 치웠다네.

마틸다를 모르시나요.

마틸다가 내 돈을 가지고 베네수엘라로 달아나 버렸어요.

그 여자가 돈도 친구도 몽땅 갖고 가버렸어요

집과 땅을 사려던 돈을

그런데 그 여자가 중대한 음모를 꾸민 거야

내 돈을 훔쳐 베네수엘라로 달아나 버렸어

돈을 내 침대 베갯속에 감춰 두었는데 그 여자가 그걸 알로

내 돈을 훔쳐 베네수엘라로 달아나 버렸어

친구여, 사랑 같은 건 두 번 다시 하지 마오.

돈은 어이없이 사라져 버리고

마틸다는 내 돈을 훔쳐서 베네수엘라로 달아나 버렸다오. 

 

가난한 탓에 사랑하는 아가씨를 빼앗기고 만 서인도 제도 총각들의 자조적인 노래이지만, 무겁고 느릿하게 어두운 감정으로 부르는 대신 밝고 명랑한 멜로디를 경쾌한 칼립소 리듬에 실어 노래했다. 단순히 코믹하다는 느낌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강렬한 에너지와 함께 애틋한 감정을 동반하고 있는 노래이다. 이처럼 칼립소는 무엇보다도 풍자 정신을 생명으로 하는 음악이다. 그것도 ‘마틸다’처럼 유머를 섞어 재치 있고 재미있게 현실을 풍자한다. 이런 풍자 정신은 삐꼰(Picon)이라고 한다. 이 말은 ‘콕콕 찌르다’라는 뜻의 프랑스어 Picotage에서 유래했는데, 에스파냐어의 삐깐떼(picante:찌르는 것 같은, 무는, 쏘는)와도 같은 의미이다. 

낭만과 위트, 풍자

제2차 시계대전이 시작되자 트리니다드에는 미군이 머물게 되었다. 미군의 주둔과 그에 따른 경제적 효과에 힘입어 섬사람들의 생활은 안정되는 것 같이 보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여러 가지 사회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1940년대의 칼립소 가수인 ‘로드 인베이더(Lord Invader)’가 발표한 ‘럼과 코카콜라’는 미군 주둔 이후 트리니다드 섬의 남자들이 느끼는 복잡한 감정을 생생하게 드러내 보여주는 칼립소의 명곡이다.

 

양키들이 처음으로 트리니다드에 왔을 때,

젊은 딸들은 기뻐했다네. 그녀들은 말했지.

‘양키는 우리를 잘 대해 주고 봉급도 많이 받으니까’

그들은 다운타운에 가서 럼과 코카콜라를 사지.

엄마와 딸들은 양키의 달러를 노리고 일하네.

우리에게는 귀여운 애인이 있었지만

그녀의 엄마가 와서 데리고 가 버렸지.

그녀도, 그녀의 엄마도, 그녀의 형제자매들도

양키가 와서 지프에 태워 가 버렸어.

 

1944년 앤드류스 시스터즈(Andrews Sisters)의 노래로 크게 히트한 ‘럼과 코카콜라’는 조금만 신경 써서 들으면 여러 가지 의미가 내포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양키에 대한 어쩔 수 없는 콤플렉스와 경멸감, 하지만 그들이 뿌리는 달러에 기댈 수밖에 없는 처지, 그리고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들과 여성들의 문제 등등... 미국의 영향에 이리저리 흔들리며 살아가고 있는 섬 사름들의 복잡한 심리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칼립소 콩쿠르

트리니다드 섬에서는 해마다 카니발 시즌이 되면 칼립소 콩쿠르가 열린다. 이 콩쿨에서 우승한 가수는 칼립소니안, 즉 직업적인 칼립소 가수로 등장하게 되며 우승자는 다음 해 카니발까지 1년간 ‘칼립소의 왕’이란 칭호를 지니게 된다. 그런데 이 칼립소 콩쿨이 다른 가요제와 다른 것 은 칼립소니안 자신의 즉흥적인 스토리를 지닌 곡이어야 한다는 점이다. 이 경우 멜로디는 그다지 중요시되지 않으며 때로는 옛 민요의 선율을 그대로 빌려 오기도 한다. 칼립소의 반주 악단도 독특한 칼라를 가지고 있다. 같은 서인도 제도라고 해도 쿠바를 중심으로 하는 일반적인 라틴 음악만큼 샤프하지는 않고, 퍼커션도 별로 쓰이지 않는다. 프럼펫, 클라리넷 등 2개 정도의 관악기에 바이올린, 피아노, 기타, 베이스 그리고 가끔 콰르토(Quatto:테너 우쿨렐레만 한 소형 기타) 혹은 벤조로 편성된다. 칼립소가 미국으로 흘러들어 간 것은 1973년경이었다. ‘Somebody stole my wedding bell'이란 곡이 칼립소 형식으로는 최초로 소개되었지만 사람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고, 1950년대가 되어서야 비로소 해리 벨라폰테의 등장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졌다. 유명한 칼립소 가수인 해리 벨라폰테는 ‘데이 오’와 ‘마틸다’를 비롯해서 ‘엄마는 마귀 같아(Mama look a Boo Boo)', ’맨 스마트(Man smart)', '자메이카여 안녕(Jamaica Farewell)'등의 칼립소 곡들을 발표하여 칼립소 붐을 일으켰다. 프랑스 정착민들은 사순절 이전의 기간을 기념하는 가톨릭 축제인 ‘사육제의 가면무도회’와 가장행렬을 들여왔다. 그러나 흑인들은 이 행사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만의 가장행렬인 Canboulay칸불레이를 조직하는데, 칸불레이는 추수기 이전에 사탕수수밭을 불태우는 것을 가리키는 프랑스어 ‘cannes brule'es’에서 나온 말이다. 이후 노예해방과 더불어 두 축제는 서로 섞이게 되었다. 카니발에서는 칼립소 텐트 의식인 picong삐콩이 열려 누가 더 비방과 풍자를 잘하는지 겨루는 치열한 경쟁이 벌어진다. 방식은 두 명의 칼립소 가수가 서로 가사를 주고받는데, 비꼬기와 톡톡 쏘는 슬랭과 사투리로 양념을 친 가시 돋친 말이 오고 간다. 노랫말은 똑같은 멜로디에 붙여지고 각 절은 상대 가수와 그들이 노래에서 조롱했던 사람들에 대해 유감이 없다는 듯 ‘Sans humainte(유감없어)’라는 뜻의 사투리로 된 반복구로 끝을 맺는다. 열기가 오른 카니발 텐트 의식에서 관중들도 ‘kaiso! kaiso!’를 왜치며 뜨거운 반응을 보이는데, 칼립소가 벌어지고 있는 현장에서 들을 수 있는 ‘ 카이소!’라는 말은 Ole! 올레~ 혹은 Bravo브라보~ 와 비슷한 격려의 외침이다. 칼립소라는 말도 격려의 외침인 카이소가 변해서 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칼립소 경연대회에서 우승자가 되면, 다음 해 카니발이 열릴 때까지 일 년 동안 ‘칼립소의 왕’으로 존경을 한 몸에 받게 되는데, ‘Lord' , 'King' , 'Might' 같은 호칭이 부여된다. 심사의 기준은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는 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신랄하게 풍자하는가에 있을 정도이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