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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의 집시가수
체코 출신의 집시 가수 베라 빌라(Vera Bila)는 1954년 체코의 집시 마을 Rokcany 출생이다. 다른 집시들과 마찬가지로 어린 시절부터 음악을 끼고 살았다. 가족은 물론 집시 밴드. 80년대 중반 체코의 음악 페스티벌에 나갔다가 다른 뮤지션들과 함께 활동, 이후 BGM 레코드사와 전격 계약하면서 세계무대로 진출한다. 정통 집시음악, 라틴, 발라드 등 다양한 음악의 분위기가 풍긴다. 베라 빌라는 자신의 밴드와 함께 Vera Bila & Kale라는 이름으로 앨범을 발표했다. 세자리아 에보라와 비슷한 체구에 인생의 고통을 오랫동안 겪어왔다는 점에서 베라 빌라의 음성에서 세자리아 에보라와 공통점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것이다.
베라 빌라(Vera Bila)
베라 빌라를 처음 볼 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역시 외모일 것이다. 150센티미터의 키에 몸무게가 150킬로그램이니, 인상적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녀는 곱지 않은 외모와 체코의 인종차별주의에 반대하며 정부의 미움을 샀지만 Vera Bila and Kale 밴드를 결성하고 1998년 발표한 두 번째 앨범이 유럽과 북미에서 커다란 성공을 가져오면서 세계적 스타가 된 후 이렇게 말했다.
"신은 나에게 아이들을 주지는 않았지만 다른 것들을 대신 주셨습니다......"
그리고 조국 체코의 인종차별에 대한 저항의 뜻을 굽히지 않을 것 이라고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결코 어디에도 가지 않을겁니다. 어디에서도 삶이란 편하지만은 않습니다. 나는 내 조국 체코에서 태어난 것처럼 내 조국 체코에서 죽고 싶습니다.” 집시의 삶을 노래하고 저항의 뜻을 굽히지 않던 그녀는 2019년 3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집시(Gypsy)에 대하여
집시(Gypsy)들은 나라가 없다. 주로 유럽 각국을 떠돌면서 씨족생활을 하고 있다. 정확한 학설은 아니지만 집시들은 인도의 서북쪽 지방에서 몰려 살다가 8~9세기경에 유럽으로 옮겨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확연하게 구분되는 독특한 외모, 외부의 공격을 거부하는 강렬한 눈빛, 한 곳에 머물지 않는 습성 때문에 자유로운 라이프 스타일의 대명사가 된 집시들이지만 실제로는 그리 낭만적이지만은 않은 슬픔과 수난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서구인들의 시각에서 집시 여인들은 성적 매력으로 충만해 있고 자유분방함을 상징하는 존재로 여겨졌다. 또 집시들은 자유로울 뿐 아니라 부도덕하고 무능한 부랑자로 여겨져 왔다. 이런 편견은 결국 집시가 겪었던 여러 가지 고난을 야기했다. 세계 2차 대전 때 집시들은 나치들에 의해 청소해야 될 종족의 대상으로 꼽혔다. 그래서 1944년 8월엔 유태인들과 함께 수용되어 있던 아우슈비츠에서 4천여 명의 집시들이 집단으로 가스 학살당하기도 했다. 지금 집시들은 유럽 각국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 조금씩 흩어져 살고 있는데 그 가운데서 도 스페인에 가장 많이 살고 있는 것으로 집계돼 있다. 현재 80여만 명으로 추산되고 있으며 세계적으로는 5백여만 명으로 꼽고 있다. 유럽 여러 나라가 공통된 일이긴 했지만 유럽은 이민족에 대한 박해가 심했다. 실제로 고향을 떠난 집시들은 한 곳에 정착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끊임없이 박해가 가해졌기 때문이다. 편견과 차별이 집시의 정착 가능성을 앗아간 것이다. 그래도 스페인을 비롯해 헝가리ㆍ루마니아ㆍ이탈리아 등의 나라들이 비교적 이민족에 대한 박해가 덜해 집시들은 자연 이들 나라에 많이 몰려 살게 됐다. 집시를 부르는 명칭은 각 나라에 따라 모두 다르다. 스페인에서는 집시를 히타노(Gitano. 여자는 히타나)로 부른다. 그러나 히타노란 말속엔 단순히 집시라는 뜻 외에 부랑자ㆍ사기꾼ㆍ도둑놈이란 뜻도 함께 포함되어 있다. 비단 스페인에서 뿐만 아니라 유럽 각국의 집시들은 이런 지칭을 들을 만큼 문제가 있는 집단이다. 나라가 없이 떠돌아다니며 또 일정한 직업도 없이 생존해야 하는 집시들로서는 사기를 쳐야 한다던가 도둑질을 해야하는 것이 당연한 생활방식 인지도 모를 일이다. 과거 집시들의 직업은 사형 집행인ㆍ가무ㆍ 요술ㆍ점쟁이 그리고 직업적인 도둑질 등이 주 직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