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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로 몬타녜스

생애

뽈로 몬타녜스는 1955년 쿠바의 삐냐르 델 리오에서 태어난 그는 7살 때부터 가족 그룹을 만들어 음악활동을 시작했습니다. 그의 형제는 11명이나 되었고, 광부이자 아코디언 연주자였던 아버지와 인자한 어머니, 그리고 형제들이 어울려 가족 음악회를 할 때는 무척 행복했다고 합니다. 쏜(Son)을 비롯해 볼레로(Bolero), 과라차(Guaracha)같은 다양한 전통음악을 접하며 자라난 뽈로 몬따녜스가 택한 길은 가수가 아니라 뜻밖에도 농부였습니다. 그는 매우 뛰어난 음악재능을 가졌음에도 꾸밈없고 소박한 농부의 길을 걸었습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그가 다시 음악활동을 시작한 건 1994년이었습니다. 40대에 접어들어 본격적인 뮤지션의 길을 걷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뽈로 몬따녜스는 형제들과 그룹을 만들어 씨에라 델 로싸리오(Sierra Del Rosario)라는 관광지에서 관광객을 상대로 연주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앨범 발매

쿠바 정부로부터 월급을 받으며 음악활동을 하던 그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1999년. 새로운 뮤지션을 발굴하기 위해 쿠바를 찾은 월드뮤직의 명문레이블 루스아프리카(LUSAFRICA)의 사장 주제 다 실바(Jose Da Silva)는 뽈로 몬따네스의 음악을 듣자마자 단숨에 매료되었다고 합니다. 쎼자리아 에보라를 비롯해 수많은 뮤지션을 발굴하고 월드스타로 만든 그의 안목이 다시한 번 빛나는 대목입니다. 주제 다 실바는 당시 무명이었던 뽈로 몬따네스에게 단번에 6년 계약제의를 했습니다. 비록 무명이었지만 그에게 뽈로 몬따네스는 다듬어지지 않은 보석이자 정원의 아름다운 꽃이었던 것입니다. 너무나도 놀라운 건 단 한 번의 음악교육을 받은 적도 없는, 악보조차도 읽을 줄 모르는 그가 무려 백 여곡 이상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건 그 많은 곡들을 오직 머릿속으로만 기억한다는 사실이죠. 한번은 전문가들이 그를 체계적으로 가르치려 했지만 그러한 시도가 오히려 뽈로 몬따네스의 천부적인 재능을 망가뜨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그만두었다고 합니다. 2000년 대망의 데뷔앨범 과히로 나뚜랄(Guajiro Natural)앨범은 먼저 유럽에서 발매되었습니다. 

 

유럽 투어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열풍이 지나간 다음이라 유럽은 쿠바 출신의 이 비범한 아티스트에게 큰 관심을 보였고, 데뷔앨범은 아주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프랑스, 포르투갈, 벨기에, 네덜란드로 이어진 유럽투어는 성황리에 끝났고, 유럽의 음악계는 새로운 월드뮤직 스타가 탄생했다는 것을 인정하기에 이릅니다. 유럽에서 시작된 뽈로 몬따녜스의 인기는 이내 중남미로 이어집니다. 독특한 건 중남미에서 그의 진가를 먼저 인정한 건 그의 조국 쿠바가 아닌 콜롬비아였습니다. 과히로 나뚜랄 앨범은 2001년 콜롬비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앨범이 됐을 정도로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런 인기열풍은 그의 조국 쿠바를 비롯해 멕시코, 에콰도르, 코스타리카 등지로 퍼져 나갔고 그의 이름은 미국에까지 알려지게 됩니다. 

안타까운 사고

하지만 너무나 안타깝게도 2002년 11월 20일 아바나에서 고향으로 향하던 그는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하게 됩니다. 47세라는 너무 이른 나이에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아쉬움을 뒤로한 채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의 음반 재킷을 보면 농부를 상징하는 밀짚모자, 낡은 셔츠를 입고 한적한 시골길을 걷고 있는 ‘농부’의 모습을 그대로 담았습니다. 거의 모든 뮤지션들이 자신의 가장 아름답고 멋진 모습을 음반재킷에 담는데 비해 이 앨범 재킷은 너무 소박합니다. 앨범의 뒷면은 더 인상적입니다. 주름진 얼굴, 농사일로 거칠어진 손 등 뮤지션의 모습이라고 보기 힘든 사진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그의 꾸미지 않은 음악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부에나 비스타 소셜클럽의 꿈바이 세군도는 생전에 뽈로 몬따녜즈를 뛰어난 재능을 가진 싱어라고 했고, 경의를 표하는 작곡가이기도 하다고 했습니다. 두 사람은 나중에 듀엣을 할 계획도 있었다고 합니다. 만약 뽈로 몬타녜스가 교통사고로 일찍 세상을 떠나지 않았더라면 두 사람의 멋진 노래를 들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뽈로 몬타녜스의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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