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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보 베르데의 국기

푸른 곶 카보 베르데

정식 명칭은 카보베르데 공화국이며 서아프리카 대서양에 위치한 섬나라이다. 수도는 해변이라는 뜻의 프라이아(Praia), 공용어는 포르투갈어이고 통화는 이쉬쿠두를 사용한다. 마카로네시아를 구성하는 지역 중 유일하게 독립국이다. 인구는 약 60만 명으로 대다수가 가톨릭신자다. 수많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섬들의 면적을 다 합치면 대한민국의 전라북도 절반 정도 되는 크기이며, 가장 큰 섬이자 수도 프라이아의 소재지인 상티아구 섬은 강원도 횡성군과 거의 비슷한 크기이다. 원래 무인도였던 카보 베르데는포르투갈에서 아프리카로 가는 뱃사람들에 의해서 발견됐고, 오랜 기간 포르투갈의 식민지로 있었던 나라였다. 포르투갈에서는 사람을 보내서 정착하게 했지만 가뭄과 기근이 워낙 심해서 많은 사람들이 카보베르데를 떠나게 되었고, 많은 이산가족과 실향민이 생기게 되는데, 그런 과정에서 생겨난 독특한 음악이 모르나이다. 포르투갈의 선율에 아프리카의 리듬이 결합된 독특한 음악이 모르나입니다. 기후는 바다 한복판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열대 고압대의 영향을 받아 열대 해양성 기후로 연평군 22도 정도로 쾌적한 편이다. 이름인 ‘카보베르데’는 포르투갈어로 녹색의 곶이라는 뜻인데 정작 포르투갈의 엔히크 왕자가 목격한 진짜 베르데 곶은 이 섬이 아니라 바다 건너 세네갈에 있다. 

음악의 특징

카보 베르데 음악은 섬세한 감정 전달을 중시하는 풍부한 멜로디와 가사로 전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으며 주요 음악장르는 다음과 같다. 

  1. 모르나(Morna): 모르나는 카보 베르데의 대표적인 음악 장르로, 슬픈 멜로디와 감정적인 가사로 유명하다. 주로 사랑, 이별, 그리움, 그리고 삶의 어려움과 같은 주제를 다루며 피아노, 기타, 바이올린 등 다양한 악기를 사용하여 연주된다. 
  2. 콜라데이라(Coladeira): 콜라데이라는 더욱 활기찬 리듬과 긍정적인 가사로 특징지어지는 장르로 모르나 보다 더 빠른 템포와 춤추기 쉬운 리듬이 특징이다. 콜라데이라는 춤추는 음악으로도 알려져 있으며, 카보 베르데 사람들은 콜라데이라를 통해 즐거움과 기쁨을 표현한다.
  3. 바투크(Batuque): 바투크는 신나는 음악으로 주로 여성들이 모여 함께 노래하고 춤추는 형태로 전해 내려왔다. 바투크는 드럼과 탬버린 등의 타악기를 중심으로 연주되며 토착적인 면모를 가지고 있으며, 카보 베르데의 문화와 아이덴티티를 대변하는 음악이다.

대표적인 가수들

세자리아 에보라

세자리아 에보라(Cesaria Evora)는 카보 베르데의 대표적인 가수로 ‘맨발의 디바’, ‘모르나의 여왕’이라는 별명이 있다. 그녀는 카보 베르데의 민델루 출신으로 항구도시인 민델루는 바와 카페, 그리고 음악이 많은 곳이었고, 에보라는 1941년 그곳에서 태어나 일곱 명의 남매와 함께 자랐다. 바이올린 연주자였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는 고작 여덟 살도 되지 않았고, 형제들은 기근으로 인해 하나 둘 이민을 떠나기 시작했다. 어린 시절부터 항구의 선술집에서 노래를 했던 세자리아 에보라는 12살이라는 굉장히 이른 나이에 첫 결혼을 하고 세 번의 이혼 뒤 다시는 결혼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할 정도로 쓰린 상처를 입기도 했다. 가족과의 이별, 사랑의 실패, 그리고 그치지 않는 삶의 고통들. 이 모든 것을 위로해 줄 것이라고는 음악뿐이었다. 그녀의 음악에는 이런 인생의 과정들이 그대로 묻어나는데, 폭음과 폭식으로 인해 불어난 몸, 어딘가 균형이 맞지 않는 듯한 이목구비, 움푹 패인 눈, 담배로 인해 탁해진 그녀의 목소리는 그녀를 더욱 안쓰럽게 만든다.  17살 때부터 카페에서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 그녀는 1960년대 후반에는 카보 베르데 전체에 이름이 알려졌고 이후 라디오 방송을 녹음한 그녀의 테이프가 네덜란드와 포르투갈에서 음반으로 발매되었다. 그녀는 1985년 45세의 나이에 포르투갈로 건너가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수많은 음반 녹음과 함께 가수로서 성공적인 길을 걷게 된다. 세자리아 에보라는 ‘맨발의 디바’라고 불리는데, 그녀가 맨발로 무대에 서는 이유는 ‘버림받은 여자의 자립’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한다.  전 세계에서 4백만 장이 넘는 음반 판매고를 올리고 다섯 차례나 그래미 후보에 오른 그녀는 2011년 카보베르데에서 숨을 거두었다.   

세자리아 에보라

바우 

쎄자리아 에보라 밴드의 리더이자 편곡자로서 쎄자리아 에보라의 음악에 다채로운 색깔을 입히고 있는 바우는 점차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했다. 까바끼뉴와 12줄 기타의 경쾌한 연주는 봄날의 따스한 햇살처럼 싱그럽다. 바우는 모르나의 예술적 경지를 한 차원 높이는 데 기여한 뛰어난 연주자로서 쎄자리아 에보라 이후의 모르나를 이끌어갈 기대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바나

세자리아 에보라와 마찬가지로 항수 도시 민델루에서 1932년 태어난 바나는 30년 넘게 카보베르데에서 가장 유명한 뮤지션으로 군림해 온 인물이다. 에보라가 부른 곡의 작곡가로 아드리아누 곤칼베스라는 이름이 종종 등장하는데, 이는 바나의 본명이다. 카보베르데의 음악인들이 대부분 그렇듯 어려서부터 노래를 불렀고 잠시 부모의 반대에 부딪혔지만, 1953년에 레자를 만나 그에게 노래 지도를 받았다. 그리고 1962년부터 앨범을 발표하기 시작해서 30여 종을 발표한 뒤 1986년에 잠정적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의 경력에서 특기할 만한 것이 있다면, 세네갈에서 음악활동을 많이 했다는 점이다. 그가 세네갈의 수도 다카르로 잠시 이주한 것은 그의 스승인 레자가 사망한 1958년 직후인데 그 뒤로도 이곳의 카보베르데인 커뮤니티 긴밀한 관계를 맺으면서 활동했다. 은퇴를 선언하기 직전에는 세네갈을 포함하여 미국, 프랑스, 포르투갈, 네덜란드 등 카보베르데인이 집단으로 거주하는 곳을 찾아 월드 투어를 하기도 했다. 아예 활동무대를 외국으로 옮긴 아티스트도 있다. 세자리아 에보라의 출세작인 [Miss perfumade]에 수록된 곡들 가운데 세 곡을 작곡한 테오필루 샹트르도 그 가운데 한 명이다. 테오필루 샹트르는 사웅니콜라우 섬에서 태어나 열세 살 때 가족이 모두 파리로 이주했는데, 그 뒤 모르나와 콜라데이라에 기초한 곡을 작곡하기 시작했고 결국에는 세자리아 에보라에게 곡을 주는 존재가 되었다. 2013년 포르투갈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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