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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원주민
“이들은 아주 평화롭고 유순해서, 세상에서 이보다 더 나은 백성은 없을 것입니다. 이들은 이웃을 제 몸과 같이 사랑하며, 말은 부드럽고 상냥할 뿐 아니라 언제나 미소를 짓고 있습니다. 벌거벗고 있기는 하지만 이들의 태도는 예절 바르고 훌륭합니다.”
콜럼버스가 신대륙에 도착해 원주민과 마주친 이후 스페인 왕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중 일부이다. 디 브라운이 그의 저서 ‘나를 우디드니에 묻어주오’에서 소개하고 있는 일화인데, 우리가 많이 사용하는 인디언은 잘못된 표현으로 야만인, 미개인이라는 잘못된 생각을 담고 있다. 백인들과 접촉하기 이전의 북미원주민들의 삶은 자연과 함께, 그리고 바람과 함께 하늘의 뜻을 따라 더불어 사는 참으로 평화스럽고 우정이 넘치는 공동체적 삶 그 자체였다. 땅의 주인으로서 백인들과 공존하기를 원했던 인디언들의 삶을 비참한 모습으로 전락하게 만든 것은 침입자인 백인들의 원주민 추방령이었다. 북미원주민들은 그들과 평화롭게 공존하기를 원했지만 백인들은 오히려 원주민들을 몰아냈다. 그로 인해 지구상에서 수많은 원주민 부족들이 사라졌다. 소수의 원주민 부족들은 삶의 터전에서 쫓겨나 보호구역으로 내몰리고 생존마저 불투명한 미래를 맞이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원주민들의 삶의 일부였던 음악은 그들의 영혼 속에서 잊혀갔다. 북미에서 원주민은 미국에 약 200만 명, 캐나다에 50만 명 정도가 존재하고 있다. 20세기 초 북미의 원주민 공동체들은 자신들에 관한 노래를 거의 부르지 않았다. 그들의 전통음악은 금지되거나 방해받았으며 암울한 미래에 직면해 있었다. 그들의 문화는 박물관의 자료로서 전시될 뿐 뿌리째 뽑혀나갈 위기를 맞았다. 다행스럽게도 1960년대 이후 원주민들의 정체성 회복 운동과 더불어 자신들의 전통음악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북미원주민 플루트
라코타족의 전설에 따르면, 한 젊은이가 숲에서 사냥을 하다가 흰개미 떼가 갉아먹은 나무를 발견하게 되었다. 자세히 나무를 들여다보았는데 딱따구리들이 쪼아놓은 구멍들도 여러 개 있었다. 갑자기 바람이 일자 아름다운 소리가 나뭇가지에서 흘러나왔다. 젊은이는 그 가지를 잘라서 마을로 돌아왔고 이 가지는 잘 다듬어져 최초의 플루트가 되었다. 라코타족은 청년이 플루트를 연주하면 바람이 그 선율을 실어 그가 사랑하는 연인의 마음속으로 전해준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플루트는 남성의 악기라는 인식이 생기게 되었고, 여성들이 연주하는 것은 금기로 여겨졌다는 것이다. 북미원주민의 플루트는 매우 제한된 음계를 지니고 있지만 플루트의 재질과 만드는 법, 그리고 연주자에 따라서 개성 있는 소리를 낸다. 보통은 평원 부족의 플루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다섯 개의 지공을 가지고 있지만, 이보다 적은 수의 지공을 가진 플루트도 있다. 북미원주민 플루트의 매력은 역시 깊은 공명과 자연의 순수함이 느껴지는 음색에 있다. 이 때문에 명상과 안식을 위한 음악으로서 북미원주민 플루트 음악은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다.
카를로스 나카이(Carlos Nakai)
카를로스 나카이는 북미원주민 플루트 1세대이자 현존하는 최고의 거장이다. 나바호 - 우트족 원주민의 혈통을 이어받아 태어난 후 1980년 미국 원주민 플루트 음악에 심취하기 전까지 코넷과 트럼펫을 공부했다. 전통 민속 음악은 물론 원주민 플루트로 연주하는 뉴에이지 음악,타 문화권의 음악과 교감하는 퓨전 월드뮤직, 심지어 재즈에 이르기까지 원주민 플루트의 음악적 가능성을 극대화시킨 연주자이다.
윤제민
윤제민은 90년대 말부터 오카리나에 빠져 다양한 활동을 해오다 어느 날 자신만의 연주곡을 연주하고자 뒤늦게 작곡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그러나 한동안 마음에 드는 곡을 쓰지 못하였는데, 어느날 악기 제작자분에게 직접 만든 북미원주민 피리를 선물로 받게 되었고, 그는 북미원주민 플루트만의 독특한 소리에 빠져들고 비로소 원하는 곡을 쓸 수 있게 되었다. 8년을 준비한 북미원주민 플루트 창작 앨범 ‘그늘 아래 머문 바람’이 있다.